1980년 이른바 ‘사회 정화’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국민이 영장 없이 연행돼 군부대에 수용됐던 삼청교육대 사건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배상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당시의 불법체포·구금이나 순화교육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뿐 아니라, 퇴소 이후 발생한 정신질환이나 사망까지 국가의 배상책임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특히 삼청교육대에서 퇴소한 뒤 정신질환이 발생해 장기간 치료를 받다가 수년 후 사망한 경우라면, 과거 국가의 불법행위와 정신질환 및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대법원은 2025년 10월 30일 선고한 2025다212444 판결에서 이러한 경우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퇴소 후 정신질환 앓다가 5년여 뒤 사망…인과관계 어떻게 판단할까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1980년 삼청교육대에 수용돼 순화교육을 받은 뒤 퇴소했다. 입소 전에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고 건강상태도 비교적 양호했지만, 퇴소 이후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으로 여러 차례 통원 및 입원 치료를 받았다.
이후 피해자는 정신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자살했고,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삼청교육대 퇴소일부터 사망까지는 약 5년 6개월이 지난 상황이었다.
재판에서는 삼청교육대 순화교육 등으로 발생한 정신질환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도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이 발생하고, 그 정신질환으로 인해 심신상실이나 정신착란 상태 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행위선택능력·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된다면 정신질환과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만으로 판단할 수 없어
대법원은 피해자가 삼청교육대에서 퇴소한 뒤 약 5년 6개월이 지나 자살했다는 시간적 간격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입소 전 정상적으로 사회활동을 했고 건강상태도 비교적 양호했던 점, 퇴소 이후 정신질환으로 여러 차례 통원 및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점, 정신질환으로 정신요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자살한 점 등을 함께 살폈다.
또 정신질환 이외에 피해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다른 원인이나 동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정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에 비춰 보면 삼청교육대 순화교육 등으로 정신질환이 발병하고, 그 정신질환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등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단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유족들의 위자료 청구 중 일부만을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진앤솔 수행 사건에서는 유족의 국가배상청구와 소멸시효가 쟁점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퇴소 이후 발생한 피해와의 인과관계뿐 아니라, 유족이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소멸시효가 문제되는 경우도 있다.
진앤솔 법률사무소가 수행한 삼청교육대 국가배상 사건에서도 피해자가 사망한 뒤 배우자와 자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는 1980년 10월 11일부터 같은 해 11월 8일까지 4주간 삼청교육대 순화교육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배우자와 자녀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는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이 주요 쟁점이 됐다. 국가는 삼청교육이 종료된 1980년 11월 또는 계엄포고 제13호가 위헌·무효라고 판단된 대법원 결정이 나온 2018년 12월을 기준으로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은 손해와 가해자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한 날을 의미하며, 단순히 손해 발생을 추측하거나 의문을 가진 정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삼청교육대 순화교육이 끝난 당시에는 국가의 행위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이후 계엄포고 제13호가 위헌·무효라고 판단됐다는 사정만으로 피해자나 유족이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을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법원은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우자에게 600만원, 자녀에게 400만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퇴소 이후 피해까지 이어졌다면 구체적인 자료 확인 필요”
삼청교육대 국가배상 소송은 과거 강제로 수용됐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가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퇴소 이후 정신질환이 발생하거나 장기간 치료가 이어졌고 사망에까지 이른 경우라면 입소 전 건강상태와 사회생활, 퇴소 이후 정신질환의 발병 시점, 통원·입원 및 치료 경과,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진앤솔 법률사무소 강정한 대표변호사는 “삼청교육대에서 퇴소한 뒤 상당한 시간이 지나 정신질환이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 사정만으로 국가의 불법행위와의 관련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입소 전후의 건강상태와 정신질환의 발병 및 치료 경과, 당시 생활상태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당시 의료기록이나 관련 자료가 충분히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남아 있는 의료기록과 행정기록 등을 토대로 피해의 경과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경남 창원을 기반으로 법률적 조력을 이어가고 있는 강정한 변호사는 삼청교육대 피해가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창원·마산·김해를 비롯한 경남 지역에도 당시 삼청교육대에 강제로 수용돼 피해를 입은 생존자와 유족들이 남아 있을 수 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국가배상청구 가능성이나 절차를 알지 못한 채 지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진앤솔 법률사무소 강정한 변호사는 “삼청교육대 사건은 단지 오래전에 끝난 사건으로만 볼 수 없으며,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그 가족들도 오랜 시간 고통을 감당해 온 만큼 국가배상청구 가능성을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경남 지역의 변호사로서 앞으로도 창원과 마산, 김해 등 경남 지역에 남아 있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인하고 국가 손해배상 등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이어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처 : 브레이크뉴스경남(https://m.breaknewsg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