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허락도 없이 배우자 일방이 중요한 재산을 처분해버린 행위,이혼사유로 인정 26.09.09

이혼 상담에서 은근히 자주 듣는 말입니다. “남편(아내)이 집 수용보상금이랑 땅을, 제 동의도 안 구하고 자식한테 다 증여해 버렸어요. 이거 이혼 사유 안 되나요?”

예전에는 이런 사건에서 “재산 갈등이 있다고 곧바로 이혼사유가 되는 건 아니다”라며 이혼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9월 대법원이, 배우자의 일방적인 ‘주요 재산 처분’이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고 명확히 인정한 판결(대법원 2025. 9. 4. 선고 2025므10730 판결)을 내렸습니다. “부부가 부양·협조의무를 통해 함께 만든 재산의 주요 부분을, 배우자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증여,처분해 가정의 경제적 기반을 형해화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단순한 재산 갈등을 넘어서, 상대 배우자의 기초적인 생존과 독립적인 생활 자체를 흔드는 일이라고 본 겁니다.


변호사의 관점에서 본 판결이 시사하는 바


부부가 함께 일궈 온 재산 가운데 노후와 생계를 떠받치는 큰 부분을, 특별한 사정도 없이, 상대방과 상의조차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처분해 버리고, 그 결과 남은 배우자가 앞으로 살아갈 집과 생활 기반을 심각하게 잃어버린 경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의 애정과 신뢰가 사실상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깨졌다면, 법은 이를 더 이상 단순한 재산 다툼이 아니라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볼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 처분이 있으면 곧바로 이혼 사유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상적인 생활비 지출, 자녀 진학이나 결혼을 돕기 위한 통상적인 지원, 전체 재산에서 크지 않은 범위의 처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후에도 상대 배우자가 자신의 삶을 꾸려 갈 만한 기반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면, 그런 일들까지 모두 혼인 파탄의 책임에 해당하지는 않겠지요.


결혼은 '사랑의 공동체'이자 '경제적 공동체'다


부부 관계는 당연히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애정과 신뢰가 실제로 유지되려면, 함께 살아갈 경제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집 한 채, 논 몇 마지기, 그 위에 쌓이는 생활비와 저축, 노후 자금. 이것들은 부부가 서로를 부양하고 협력해서 만들어 낸 공동의 토대입니다.

그래서 민법도 누구 재산인지 불분명한 건 부부의 공유로 보고, 이혼할 때는 “당사자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재산”을 명의와 상관없이 나누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단순히 “감정 관계”로만 보지 않고 경제적 공동체로도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있죠.


노후를 함께 하기로 한 배우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


이 판결은 어떤 의미에서, “부모의 재산은 당연히 자식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오래된 상식을 조용히 흔드는 판결이기도 합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선택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지금 내 곁에서 노후를 함께 버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생활과 경제적 불안을 얼마나 떠안게 되는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평생을 함께 일궈 온 재산을 나누면서도, 함께 보낸 세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이 지워져 버리면 안되겠죠.

언젠가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일 수는 있지만, 지금 이 집에서, 이 노후를 함께 버티고 있는 사람은 내 배우자라는 인식이 조금 더 단단해졌으면 합니다. 법이 이번 판결을 통해 그 지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이제는 각 가정 안에서 그 인식을 어떻게 실천할지 차분히 돌아볼 차례일지도 모릅니다.